마태복음 13:3-9
농부의 열망
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이란 얼마나 간절할까요. 땅에 작은 씨앗 하나를 묻을 때, 그의 눈앞에는 이미 푸릇한 싹과, 무성한 줄기, 그리고 탐스러운 열매가 그려져 있을 것입니다. 설마 씨만 뿌려놓고 “달리면 다행이고, 아니면 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농부가 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는 참된 농부가 아닐 것입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참으로 좋은 농부이십니다. 신실하시고, 인내심이 깊으시며, 당신이 뿌리신 씨앗이 풍성한 열매를 맺기를 간절히 바라시는 분입니다.
저는 밭에 씨를 뿌려본 경험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작년 봄, 둘째 아이가 교회에서 봉숭아 씨앗을 받아와 작은 화분에 심었습니다. 처음엔 저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며칠 후, 흙을 뚫고 올라온 여린 싹을 보았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작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애착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는 자주 물 주기를 잊었고, 제가 대신 물을 주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알게 된 사실은, 봉숭아는 매일 물을 주지 않으면 안 되는 식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을 줄 때마다 부쩍부쩍 자라나는 그 모습이 경이로웠습니다. 큰 화분으로 옮겨 심고 정성을 쏟자, 여름에는 커다란 꽃이 피고, 가을에는 말할 수 없이 많은 씨앗이 맺혔습니다.
이렇듯, 씨를 뿌린 자만이 싹이 트기를 바라고 좋은 열매를 거두기를 소망하는 그 깊은 열망을 압니다. 주님께서는 바로 그 열망을 담아 ‘씨 뿌리는 비유’를 말씀하시며, 우리에게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풍성한 결실을 거두기를 갈망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깨닫게 하고 싶으셨을까요?
좋은 땅은 방법을 묻지 않는다
이 비유의 요지는 간단합니다. 첫째, 씨앗이 싹을 내지 못하는 나쁜 땅과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좋은 땅은 풍성한 결실을 맺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종류의 밭(길가, 돌짝밭, 가시덤불, 좋은 땅)을 말씀하셨지만, 사실 이것은 열매 맺지 못하는 밭과 열매 맺는 밭, 이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농부는 좋은 밭에만 씨를 뿌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자리에 앉아 말씀을 듣는다 해도, 네 명 중 세 명은 열매를 맺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말씀을 귀 밖으로 듣고 흘려버리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좋은 땅은 남들이 씨를 잃어버리고 놓쳐버릴 때, 말씀을 깨닫고 자신에게 적용하여 변화되고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땅의 결실은 씨앗과 동일한 종류, 동일한 속성의 열매입니다. 농부이신 하나님은 뿌려진 말씀의 씨앗과 같은 속성의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 비유를 듣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떻게 하면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던져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좋은 땅이 되는 3단계 비법’ 같은 말씀을 전혀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일까요?
13장 11절에서 예수님은 이 비유가 “천국의 비밀”이라고 하셨고, 좋은 땅과 나쁜 땅의 차이는 “말씀을 듣고 깨닫는 데” 있다고 하셨습니다(19절, 23절). 이것이 중요한 단서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을 들을 때, 이미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깨닫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좋은 밭’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좋은 밭이 되는 ‘방법’이나 ‘비결’이 필요 없습니다. 이미 좋은 땅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어떤 ‘방법’이나 ‘비결’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여전히 이 비유가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 비유는 ‘좋은 땅이 되라’는 교훈이 아니라, 나쁜 땅과 좋은 땅이 어떤 땅인지를 소개해 주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원래 나쁜 땅이었기에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좋은 땅과 나쁜 땅으로 나뉘어 태어났을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 ‘나쁜 땅’이었다고 선언합니다. 죄 가운데 태어났으며, 모두가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사실은, 예수님은 결코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땅’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나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 ‘나쁜 땅’들을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좋은 땅으로 변화시켜주실 권세를 가지고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이 부르시는 땅은 원래부터 좋은 땅이 아니라, 바로 이 나쁜 땅입니다. 주님은 나쁜 열매를 맺는 그 모습 그대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자신이 열매 맺지 못하는 나쁜 땅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이 이 초청에 응할 자격이 있습니다. 끝까지 자신이 나쁜 땅이라는 사실을 숨기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이 초청에 응할 수 없습니다.
원래는 나쁜 땅이었으나 좋은 땅이 된 사람들은, 이 주님의 부르심에 겸손히 응답한 사람들입니다.
갈아엎고 가꾸시는 은혜
주님의 초청에 응답한 사람들에게, 농부이신 주님은 이제 그 땅을 갈아엎는 일부터 시작하십니다. 이 작업은 아프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뢰해야 할 사실은, 이 땅을 갈아엎고 계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씨를 뿌리시는 분도 하나님, 이 땅을 가꾸어 주시는 분도 하나님, 이 땅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땅으로의 변화는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 땅은 농부이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그분의 손길을 신뢰해 가면서 점점 더 좋은 밭으로 변해갑니다. 그리고 점점 더 좋은 밭으로 변해갈수록, 말씀의 씨앗에 합당한 풍성한 열매, 곧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되는 것입니다.
2006. 2. 26(주일) 설교 “다시 읽는 씨 뿌리는 비유” 원고를 재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