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열심’보다 ‘이것’은?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열정과 노력, 헌신적인 수고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더 뜨겁게 봉사하고, 더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믿음의 척도라고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그 모든 ‘열심’보다 더 근본적으로 보시는 것이 있다면 어떨까요? 우리의 행동 이전에 우리의 존재 자체를 먼저 살피신다면 말입니다.
고대 이스라엘의 선지자 학개는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에게 뜻밖의 통찰을 던져줍니다. 그의 짧은 메시지 속에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게 하는 강력하고도 도전적인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학개서를 통해 우리의 믿음과 목적,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이해하는 방식을 새롭게 할 3가지 핵심 메시지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거룩함은 전염되지 않지만, 부정함은 전염된다
학개는 당시 제사장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첫째, “거룩한 고기를 담은 옷자락이 다른 음식에 닿으면, 그 음식도 거룩해집니까?” 제사장들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둘째, “시체를 만져 부정해진 사람이 어떤 물건에 닿으면, 그 물건도 부정해집니까?” 그들은 “그렇다”고 답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충격적인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부정함(unholiness)은 쉽게 퍼져나가지만, 거룩함(holiness)은 저절로 옮겨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무너진 성전의 기초를 놓으며 큰 기쁨과 감격으로 “대성통곡하며” 찬양했습니다. 하지만 그 뜨거운 열정으로 시작된 공사는 무려 20년 동안이나 중단되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여전히 ‘부정한(unclean)’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포로 생활 70년에 20년을 더한 90년의 세월은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게 바로 서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들의 열심과 노력, 희생적인 헌물조차 하나님께 온전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열 심 보다도 먼저 는 정결한 이에요.
이 메시지는 우리의 신앙적 우선순위를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하는가(doing)’보다 우리가 어떤 존재’인가(being)’에 먼저 관심을 두십니다. 우리의 내면이 먼저 정결하게 바로 서지 않는다면, 우리의 모든 열심은 공허한 외침이 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내면 상태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하나님은 이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어떻게 일하실까요?
2.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동전의 양면이다
학개서에서 하나님은 “하늘과 땅을 진동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 ‘흔들림’은 표면적으로 세상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행위입니다. 세상의 권세와 보좌를 뒤엎고 그들의 군사력을 무너뜨리겠다는 무서운 선포입니다.
하지만 학개는 여기서 놀라운 역설을 보여줍니다. 바로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이 종종 같은 사건을 통해 동시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노아의 홍수’입니다. 하늘에서 쏟아진 비는 세상을 향한 무서운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비는 노아와 그의 가족을 태운 방주를 물 위로 띄워 올린 구원의 도구였습니다. 하나의 사건이 누군가에게는 멸망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구원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은 따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원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의미를 줍니다. 세상이 흔들리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위기의 순간이, 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위한 구원과 회복을 이루어 가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세상의 ‘진동’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진동 속에서 하나님께서 노아의 방주를 들어 올리셨던 것처럼 자신의 백성을 일으켜 세우고 계심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세상을 흔들어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면, 그 속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로 부름받았을까요?
3. 당신은 하나님의 ‘인장 반지’가 되도록 부름받았다
학개서의 메시지는 스룹바벨이라는 지도자에게 주어진 놀라운 약속으로 절정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그를 자신의 ‘인장 반지(signet ring)’로 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고대 사회에서 왕의 인장 반지는 단순한 장신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왕의 모든 권위, 신뢰, 그리고 결정권을 상징했습니다. 바로가 자신의 인장 반지를 요셉에게 줌으로써 이집트의 모든 권한을 위임했던 것처럼, 인장 반지는 왕 자신과 동일시되는 강력한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약속을 주실 때, 스룹바벨을 정치적 직책인 ‘유다 총독’이라 부르지 않으시고 그의 혈통인 ‘스알디엘의 아들’이라 부르십니다. 이는 그를 단지 행정가로서가 아니라, 다윗의 왕가라는 언약의 계보 안에서 인정하고 세우시겠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 약속의 완전한 성취는 하나님의 진정한 ‘인장 반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엄청난 약속이 오늘을 사는 모든 믿는 자에게 확장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우리를 그분의 인장 반지로 삼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우리들을 이제는 스룹바벨아 하고 부르시면서 내가 너를 나의 인장 반지로 삼겠다 라고 하세요.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것을 넘어선 차원의 부르심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권위와 신뢰를 위임받아 그분의 뜻을 이루어가는 대리인으로 살아가도록 부름받았다는 뜻입니다.
마치며
학개서의 세 가지 메시지는 우리의 신앙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보다 내면의 정결함을 먼저 보시고, 세상의 혼돈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가시며, 마침내 우리 각자를 그분의 권위를 지닌 ‘인장 반지’로 세우기 원하십니다.
이 고대의 말씀은 우리에게 단지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묻는 것을 넘어, “나는 하나님 안에서 어떤 존재가 되어가고 있는가?”를 묻게 합니다.
만약 오늘 당신이 하나님의 신뢰받는 인장 반지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무엇이 달라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