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수 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16~24

들어가면서

‘감사’가 명령으로 가능할까? “감사해!”라고 말이다. (예화) 교실에서 두 아이가 싸웠다. 선생님이 혼을 낸 다음 “사과하라”고 시켰다. 싸운 아이들은 선생님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사과한다. 과연 진심의 사과일까? 이처럼 ‘감사’는 명령으로 되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진정한 감사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이 말씀을 살펴보려고 한다. 사실 우리는 이 구절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좋은 일이 있거나 감사할 제목이 딱히 떠오르지 않을 때 “범사에 감사”라고 할 수도 있다. 성경에 “범사에 감사”란 무엇일까?

성공했을 때, 영광을 얻었을 때, 풍족한 삶을 살 때, 건강할 때, 합격했을 때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이런 일들에 대해 자신에게 영광 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먼저 감사한다면 참으로 귀한 일이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가? 고난 당했을 때, 결핍이 있을 때, 풀기 힘든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을 때, 실패했을 때, 건강을 잃었을 때, 억울할 때,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과연 감사할 수 있을까? ‘범사에 감사’라고 하지만 실천하기는 매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씩 한 걸음씩 감사를 실천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귀하다.

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인 데살로니가전서가 기록된 배경을 먼저 살펴보려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에 데살로니가를 처음 방문하여 전도하였다. 3주간에 걸쳐 유대인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듣는 사람들 중에는 헬라 사람들이 많았고 귀부인들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바울을 시기하는 유대인들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온 시내에 소동을 일으켰다. 바울에게 숙식을 제공한 야손과 그 형제들을 끌고 가서 옥에 가두었다. 이 상황은 바울에게 위협이 되었다. 바울을 따르던 사람들의 도움으로 바울과 일행들은 밤에 몰래 그곳을 빠져 나오게 되었다.

그 후 바울은 베뢰아, 아데네를 거쳐 고린도에 머물렀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아직 믿음이 어린데 박해를 잘 견디고 있을까, 믿음은 잘 자라고 있을까 염려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낸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에 대해 두어 가지 질문을 제기하게 된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아무 일 없이 평안했는가? 그곳 교인들은  평화롭게 풍족했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박해를 당하였고, 귀족이었던 신분조차 빼앗길 위협에 처해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바울을 통해 짧은 시간 들었던 복음의 말씀을 간직하면서 신앙을 지켜가고 있었다.

본문의 관찰

범사에 감사하라.

“범사”란 “모든 상황 속에서”라는 의미이다. 범사에 ‘대한’ 감사가 아니라 범사 ‘속에서’ 감사이다. 전쟁과 같은 나쁜 일에 대해 그것을 감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전쟁의 상황 속에서’ 감사하라는 의미이다. 특정한 조건에 따라 하는 감사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감사하라는 의미이다.

1948년 여순사건 중에 두 아들을 잃은 손양원목사님의 10가지 감사기도는 유명하다. 그 중 첫 번째만 소개한다.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하나님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다음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 복음에 대한 참된 기쁨이 있어야 한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범사에” 감사함은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그들의 감사는 복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고 구원의 기쁨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본문 5장을 1절부터 읽어보면, 재림에 관한 말씀이 나온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비록 믿음이 아직 성숙하지 못하고 어린 아이와 같은 상태였지만 그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들의 믿음은 현실 생활의 풍족함이나 성공이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영생’에 소망을 두었다. 그렇기 때문에 박해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복음을 끝까지 지켰다.

세상 현실에서 만족을 찾는 사람들은 ‘복음이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범사에 감사’할 수 없다. 현실에 주어지는 상황에는 항상 만족스런 것들과 불만족스러운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상황을 넘어서서 ‘복음’ 안에서 참된 만족을 찾는 사람들은 ‘범사에 감사’함을 배우게 된다.

둘째,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온전한 신뢰가 있어야 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쫓기듯 도망 나왔다. 우리 같으면 아마 다시는 돌아가기 싫었을 것이다. 바울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 곧 섭리하심을 온전히 신뢰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주어진 상황보다 그 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인내했다. 그렇기 때문에 “범사에 감사”할 수 있었다.

빌립보서 4장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로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다. 염려하는 일에 대해 기도하고 간구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감사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에서만 나올 수 있다.

역대하 20장에는 모압, 암몬, 마온 자손들이 유다를 침공했던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유다의 여호사밧 왕은 이 전쟁을 막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저 하나님께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 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 때 야하시엘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이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이라”고 했다.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신뢰했다. 결국 여호사밧은 싸울 필요도 없이 대승을 거두었고, 나라는 평안을 얻었다.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들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이다. 아직 결과가 나타난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신뢰하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할 수 있으려면 나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범사에” 나를 드리고 맡길 수 있어야 “범사에” 감사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일부만 드리고 온전히 드리지 못한다면 역시 ‘범사에’ 감사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로마서 8:28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그에게 우리 자신을 온전히 헌신해야 한다. 그럴 때에 비로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 믿음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약속

말씀을 살펴본 바와 같이 과연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우리에게 가능할까? 우리로서는 불가능할 것이다. 부분적인 감사는 가능하겠지만 온전한 감사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루실 수 있다. 우리를 자녀로 택하시고 구원으로 부르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부르셨기 때문에 그가 모든 것을 이루실 것이다.

본문 23절에 약속이 분명하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또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라고 했다. 

범사에 감사함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뜻이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이 이루신다.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 말씀은 우리들에게 이런 것을 바라보고 사모하라고 한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이니 사모해라, 바라보라! 하신다.

기도

오늘 말씀을 통해 저희 삶을 돌아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주님의 명령 앞에서, 저희의 감사가 얼마나 조건적이고 이기적이었는지 고백합니다. 좋은 일이 생길 때, 성공하고 풍족할 때는 감사하지만, 고난과 결핍, 실패와 아픔 속에서는 원망과 불평을 먼저 내세웠던 연약한 저희를 용서하여 주소서.

상황 ‘때문에’ 드리는 감사를 넘어,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감사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소서. 세상의 만족이 아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복음의 참된 기쁨이 저희 마음속에 샘솟게 하소서. 십자가의 사랑과 영원한 생명의 소망으로 인해 현실의 어려움을 뛰어넘어 감사하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게 하여 주소서.

저희 삶의 모든 순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를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닥쳐올 때에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잠잠히 인내하고 기다리게 하소서. 염려와 두려움 대신 감사함으로 주님께 모든 것을 아뢰는 믿음을 주소서.

저희 자신을 온전히 주님께 내어드리기 원합니다. 저희의 뜻과 계획을 내려놓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저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저희를 부르신 주님은 신실하시기에 이 모든 것을 또한 이루실 줄 믿습니다. 저희의 삶이 감사의 고백으로 가득 차게 하시며, 그 감사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세상에 증거하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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