쇠사슬이 가르쳐 준 겸손


므낫세. 유다의 왕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이름입니다.

우리는 흔히 “성공한 2세”는 기대하지만, “신앙의 계승”은 어려운 법인가 봅니다. 아버지 히스기야는 종교 개혁을 단행했던 신실한 왕이었지만, 그 아들 므낫세는 불과 12세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아버지가 허물었던 우상들을 모두 다시 세웠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가장 거룩해야 할 성전 안에까지 이방 신의 목상과 제단을 들여놓았습니다.

성경은 므낫세의 악행을 묘사하며 충격적인 표현을 씁니다. “그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멸하신 여러 나라보다 더욱 악하게 행하여“(대하 33:9). 그는 그 땅의 가장 악한 이방인들보다 더 악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보내 아무리 말씀하셔도, 그는 귀를 막고 교만하게 자신의 길을 고집했습니다.

왕으로서 55년, 참으로 긴 통치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길고 안정된 시간은 결국 그를 더 깊은 죄의 늪으로 몰아넣었을 뿐입니다.

결국 징계가 찾아왔습니다.

앗수르 군대가 들이닥쳤습니다. 왕궁의 호화로운 침대가 아닌, 차가운 흙바닥에 끌려 나간 므낫세는 쇠사슬에 꽁꽁 묶였습니다. 그는 앗수르의 왕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화려한 왕관 대신 쇠사슬이 그의 목을 조였고, 백성의 찬양 대신 채찍 소리가 그의 귀를 때렸을 것입니다.

바로 이 쇠사슬이 므낫세의 스승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왕위에 계속 앉아 있었다면, 그는 평생 자신을 돌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찾을 이유가 없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잃고, 가장 비참한 곳에 내던져졌을 때, 그는 비로소 한 분을 기억해 냈습니다.

“그가 환난을 당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손하여…” (대하 33:12)

궁극의 고난, 궁극의 비참함은 교만한 왕을 무릎 꿇게 했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먼 타국으로 끌려가던 그 길 위에서, 그는 오직 간구하고 겸손해지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인간의 악함의 끝을 보여주었던 므낫세의 회개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용서하시고 다시 왕위에 앉혀주셨습니다. 복위한 므낫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우상을 제거했고, 파괴된 제단을 보수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징계하셔도
당신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고난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합니다. 그러나 므낫세의 삶을 돌아보면, 그를 영원한 파멸에서 구원한 것은 바로 그 쇠사슬이었습니다. 징계가 없었다면, 그는 죽는 날까지 교만한 악한 왕으로 남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찾아오는 고난과 어려움은 때로 우리를 무릎 꿇게 하는 쇠사슬과 같습니다. 그 순간이 가장 고통스럽지만, 사실은 우리를 교만에서 건져내고, 가장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일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내 삶의 고통을 불평과 원망으로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므낫세처럼, 우리에게 겸손을 가르치고 회개로 인도하는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쇠사슬이 풀린 후에도 겸손을 잃지 않았던 므낫세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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