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끝에 찾아오는 허전함과 공허함은 단순히 긴 휴식 뒤의 피로감이나 아쉬움일까요? 어쩌면 이 보편적인 감정은 우리 내면의 더 깊은 무언가를 가리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놀랍게도 2000년 전,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이었던 초막절 마지막 날, 예수님이 군중을 향해 외쳤던 말씀 속에 이 문제의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1. 명절의 화려함도 채울 수 없는 ‘영적 갈증’이 있다
유대인에게는 3대 명절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초막절’입니다. 초막절은 추수를 마친 후 8일간 이어지는 큰 축제로, 우리나라의 추석이나 추수감사절처럼 풍요와 기쁨을 나누는 즐거운 절기였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명절을 지키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바로 이 명절의 마지막 날, 모든 축제가 끝나고 사람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려는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은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외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8일간의 화려한 명절과 종교적 행사가 사람들의 근본적인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었다면, 예수님은 굳이 그렇게 외치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명하신 가장 즐거운 감사의 축제마저도 그들의 가장 깊은 갈증을 해결해주지 못했다면, 우리가 보내는 찰나의 휴일이 과연 그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이 외침은 세상의 즐거움이나 경건한 종교 의식만으로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 깊은 ‘영적 갈증’이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2. 예수는 조용히 가르치지 않고 ‘클랙슨처럼’ 절박하게 외쳤다
예수님의 행동은 당시로서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당시 가르치는 사람은 서당의 훈장처럼 앉아서 점잖게 말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관습을 깨고 벌떡 “서서” 외치셨습니다. 앉아서 차분히 가르칠 수 없을 만큼 그분의 마음이 절박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외치셨다”는 말의 원어 ‘에크락센(ekraxen)’이 가진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오늘날 자동차 경적 소리를 뜻하는 ‘클랙슨(klaxon)’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또한 ‘비명(scream)’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외침은 조용한 권유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위험을 알리는 자동차 경적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향해 터져 나온 절박한 비명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왜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을 드러내며 외치셨을까요? 8일간의 명절을 지내고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목마름을 안고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안타까움과 불쌍함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그들을 구원하고 싶은 예수님의 마음이 절박했던 것입니다.
3. 진짜 만족은 외부가 아닌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흘러나온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 깊은 갈증을 어떻게 해결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을까요? 그분은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여기서 ‘배’는 단순히 우리의 복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마음 가장 깊은 곳’, 즉 우리 존재의 중심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이것입니다. 참된 만족과 해갈은 돈, 맛있는 음식, 명절의 즐거움과 같은 외부적인 것들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를 믿을 때 주어지는 ‘생수’, 즉 ‘성령’을 통해 우리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강처럼 흘러나온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이 생수는 바로 예수님이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과 같습니다. 한번 마시면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샘물이 내 안에 생기는 것입니다.
이 생수를 얻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 첫째는, 내 안의 채워지지 않는 공간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내 힘으로는 채울 수 없는 마음의 공허함이 있음을 고백할 때,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는 듯 우리를 맞아주십니다.
• 둘째는, 마음을 열고 그 생수를 구하는 것입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주님은 구하는 이에게 부어주시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 셋째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성령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외치셨던 이유는 바로 이 성령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결론: 명절 끝의 공허함은 ‘영적 기회’입니다
긴 연휴가 끝날 때 느끼는 허무함과 허전함을 그저 무시하거나 나쁜 감정으로만 여기지 마십시오. 오히려 그것은 세상의 어떤 즐거움으로도 채울 수 없는 우리 마음의 빈 공간, 즉 우리의 ‘영적 갈증’을 발견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입니다.
이번 명절 끝에서 발견한 당신의 허전함은 무엇을 가리키고 있습니까? 그 마음 깊은 곳의 갈증을 무엇으로 채우시겠습니까? 우리를 지치게 하는 빽빽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지만, 이제는 다릅니다. 우리 안에서부터 흘러넘치는 생수의 강이 그 모든 순간을 채우고도 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